유레카 입니다
블로그에 마케팅 관련 글이 어느새 30개가 넘어가며 의료상품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 계기를 성장 칼럼 형식으로 남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방법을 계속 찾으며 마케팅을 했었던거 같습니다
마케팅 터닝 포인트1탄은 처음 광고대행사 3곳에서 했던 일들 입니다 영상 제작사,바이럴 마케팅 대행사,언론홍보사이고 성장칼럼인만큼 나에게 쓰는 일기처럼 반말체로 작성한다는점 양해 바랍니다
I 첫 광고, 영상 콘티를 만들다
내가 부푼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은 회사는 영상제작사로 당시 영상 광고는 패러디나 티저, 또는 이슈를 만들어 내고자 일부러 노이즈마케팅을 노리는것이 새로운 기법처럼 등장했었다
더불어 바이럴 마케팅의 초창기로 바이럴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안된 시기였던거 같고 미국에서 만든 바이럴 영상이 '해외에서 1시간만에 완판된 광고'라는 제목으로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바이럴 마케팅이란? 영상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퍼져나가는것이 마치 전파되는거 같다 하여 바이러스 마케팅에서 파생됬다는 썰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초창기 노이즈 마케팅인 '압구정 사과녀'는 반은 실패했지만 반은 성공해 목적 달성을 했고 압구정 사과녀를 이은 홍대 바나나녀까지 등장했다
해외에서 1시간만에 완판된 광고 (바이럴 광고)

믹서기에 아이폰을 넣고 갈아버리는 영상으로 믹서기 성능의 의심을 날려 버린다
압구정 사과녀(노이즈 광고)

압구정 길거리에서 사과를 팔며 사과를 사고 싶으면 돈을 주고 싶은 만큼 주고 사가라는 문구로 남성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선영아 사랑해(티저 광고)

어느날 거리 곳곳에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벽보가 붙여졌다
당시 나는 패러디,티저,노이즈,바이러스 영상의 설명과 대사를 넣는 콘티를 만드는 일을 했다 내가 만든 광고중 하나는 눈썰매장 바이럴 영상으로 이제까지 눈썰매장에없던 무빙워크를 설치해 썰매장을 오르락 내리락 할필요가 없는점을 바이럴 시켜달라고 했다
눈썰매장은 특성상 항상 언덕에 위치해 있기에 당시 인기를 끌던 개그콘서트의 코메디언 박영진을 섭외했다 근검절약을 강요하는 구두쇠 시골 이장 컨셉으로 시골에서 다 놀러 나가면 소는 누가 키워~소는! 이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코메디언이었다


콘티는 무빙워크에선 가족들이 편하게 리프트로 이동하는데 반대편에선 놀러온 가족을 타박하기 위해 눈썰매장에 쫒아온 박영진이 다 놀러 나가면 소는 누가 키워~라며 소와 걸어서 눈썰매장을 올라가는 아버지 모습을 뭉클하지만 잼있게 연출했다 마지막에는 아버지가 투덜대며 리프트에 소를 태워 올라가지만 눈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는 장면으로 가족들이 빵빵 터질 수 있게 했다ㅎㅎㅎ

말하자면 상품 가치가 아니라 평가 가치가 있었고 이것이 도움되는 광고라는 나에게는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영상제작은 광고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일거 같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거 같진 않았다
II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에서 해고 위기에 처하다
영상제작사를 그만두고 이직한곳은 블로그,카페,페이스북 운영을 대행하는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였다 메인 광고주는 중/고등 참고서 출판사로 누구나 아는 대형 출판사였다 출판사에서 요청한것은 학습 방법을 블로그에도 올리고 교제 서평단을 모집해서 교제 후기를 카페에 올릴 수 있게 운영대행을 맡겼다
또 하나의 메인 광고주는 핸드백과 남성 구두 브랜드였는데 한때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유명했던곳으로 아직 전국에 매장이 있지만 인기가 점점 떨어져 기억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브랜드였다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해서 이미지를 쇄신하려고 했고 페이스북 운영 대행을 맡겼다
출판사에서는 서평단과 출판 간담회도 했는데 출판사로 서평단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서평단중에 학부모 블로거들이 많이 있어서 블로그에 간담 내용을 쓰고 당시의 파워 블로거는 카페에 학습 전문가로 활동하는 필진 지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원하는 블로거는 한명도 없었고 카페는 활성화를 시키지 못했다
무료 서평단을 모집할때만 방문수가 많아지고 모집이 끝나면 또 감소했다 이것은 차후 내가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카페 활성화가 안됬던 이유를 알게됬는데 그 이유는 다음 칼럼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다른 메인 광고주였던 패션 브랜드도 증정 이벤트를 제외한것에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상업적 사진을 주기적으로 올리거나 친구가 아닌 사람을 반복적으로 추가 하니 계정이 블록당해 막혀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광고주에게 계속 리포트도 보내줬지만 회의감이 들었다 회의감이 깊다 보니 정말 잘못된 일이지만 일을 제대로 안하는 업무 능력이 없는 나를 대표가 직접 자르려고 한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정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 자신은 정말 많은 회의감이 들었지만 광고주가 원한것이 블로그나 카페 운영이었는지 아니면 매출을 높여달라는 것이였는지 모르겠다 혹은 블로그, 카페운영을 하면 당연히 매출도 오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차후 광고주가 광고를 연장했는지 결과물을 보고 끝냈는지는 알지못한다
아무튼 무엇보다 내가 불만을 가질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무언가 한계에 부딪친것 같지만 명확히 정리가 안된 상태로 바이럴광고 대행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III 언론홍보사를 그만두고 매출로 연결되는 마케팅을 시작하다
두번째 광고회사까지는 아직 마케팅 마인드를 알지 못했지만 세번째 언론홍보사에서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눈 뜨게 되었다 뉴스탭에 기사를 실어주는 기사 광고를 했고 광고로 매출이 어떻게 변했다는 피드백은 광고주에게 한번도 받지 못했다 결론은 광고가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나에게 첫번째 터닝포인트 전환을 가져왔다
되돌아 보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던 나의 확고한 생각은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 마케팅은 지속되지 않는다 이다
홍보를 할 경우 한가지 홍보만 하는것보다 여러 매체에 홍보를 하는것이 더 효과적이다 화단에 비유하자면 봄에만 집중적으로 피는 꽃만 심지 않고 가을에 더 아름다운 꽃도 심어 화단을 가꿀수록 더 보기 좋다 광고 또한 마찬가지인데 언론홍보 기사는 가을에 더 아름다운 꽃이지만 광고에서는 화단이 풍성하게 보이기만 한다는걸 깨달았다
나의 첫번째 터닝포인트는 영상 제작사,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 언론홍보사를 거치며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 마케팅은 하면 안된다란 깨달음을 얻은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전환을 맞게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더 큰 두번째 전환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바로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는 곳에서 마케팅에 눈을 뜬것이다
두번째 터닝포인트를 얻기까지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어떻게 마케팅에 눈뜨게 되었는지는 2탄에서 이야기 합니다 2탄도 많은 기대 바랍니다
'브랜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케팅 터닝포인트 3탄] 플랫폼 운영자에서 성형외과 MSO관리자가 되다(1억짜리 깨달음을 얻다) (0) | 2023.08.15 |
---|---|
[마케팅 터닝포인트 2탄] 광고 대행사 직원에서 플랫폼 운영자가 되다(3개월 수술 예약을 풀로 채운 플랫폼 위력을 느끼다) (0) | 2023.08.11 |
성형외과 MSO에서 마케팅 매출을 높인 계기를 성장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0) | 2023.08.09 |
수술 실력으로 평가가 난다는 착각 (0) | 2023.08.09 |
[성형외과 SEO 4탄] 대상을 지명해 부르고 말을 걸어라, 반응이 오면 SEO를 하라 (1) | 2023.08.09 |